[올바른 반려동물 문화 만들기⑥] 우리는 이제 반려동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장현순 기자 / 기사작성 : 2018-07-27 09:22:00
  • -
  • +
  • 인쇄
편협한 애정은 또 다른 의미의 가축화이다
▲사진=게티이메진스

바야흐로 한국도 이제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인구가 천만 명에 달하고 있다. 동물이 인류와 함께한 것은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타나므로 우리 곁에 동물이 있다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가 인식하는 반려동물이라는 개념은 어떤 면에서는 동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기도 하다.


야생동물들은 생존 영역을 두고 인간과 충돌해 왔기 때문에 친밀한 존재라기 보다는 경쟁상대나 경외의 대상으로 여겨졌고, 가축으로써 동물은 노동력을 제공하거나 식량을 제공하는 역할로 인간의 곁에 머물며 정서적 교감을 이룰 수 있었다.


이 경우에도 동물은 자신의 존재를 역할로 증명할 수 있어야 했다. 소라면 노동력과 식량, 가죽 등을 제공하고, 개라면 집을 지키는 것 등의 기본 역할을 할 수 있을 때 인간과 함께할 자격이 주어졌다.


현대의 반려 동물은 이와는 다르게 존재 자체가 인간과 함께 하는 이유가 될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집을 지키는 개들이 있지만, 많은 애견인들이 자신이 개에게 이러한 역할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시끄럽게 짖지 못하게 하는 것이 숙제인 경우도 많다. 요즘 쥐를 잡기 위해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닭도 달걀이나 고기를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듯 반려동물은 가축이라는 개념과 근본적인 시각차가 존재하기에 사회적으로도 이에 대한 보편적인 공감대가 필요하다. 아직도 가축으로써의 동물만 인정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감정이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효용이 아닌 존재 자체가 목적이 되는 생물이 인간만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 인류의 시각을 넓히는 큰 진전이다. 어릴 적부터 이러한 관점에 익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 때도 그 사람을 목적으로 대할 수 있는 포용력을 가지기 쉬울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관점이 자신의 반려동물에게만 적용되는 편협한 경우이다. 나의 반려 동물을 위해서는 어떤 것도 아깝지 않지만, 그 반려동물 때문에 피해를 입는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동물들에게는 놀라우리 만치 무관심한 이중적인 태도가 반려 동물에 대한 거부감을 일으키게 한다.


마치 나의 아이만 소중하게 여기는 부모들처럼 내 반려동물만 존재 가치가 있는 것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반려동물을 자신의 과시욕이나 소유욕의 왜곡된 분출구로 사용하는 또 다른 의미의 ‘가축화’이다.


우리는 곁에 있는 동물들에 대한 태도에 대해 자문할 필요가 있다. 가축으로 대하고 있는가? 아니면 반려동물로 대하고 있는가?


[저작권자ⓒ 펫이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글자크기
  • +
  • -
  • 인쇄